세월호 유가족 '인양 촉구.시행령 폐기' 호소 도보행진<사진 :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지난 3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
지난해 4월 16일 생존자들을 태우고 배가 도착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기다림의 부두'에는 1년이 지나 진도 본섬과 조도면을 오가는 작은 차도선 한 척 만이 무심하게 오가고 있었다.
빨간 등대를 향해 나 있는 길을 따라 나부끼는 노란 리본, 바닷속 실종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춥길 바라는 마음으로 짠 손뜨개 옷은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에 노란 리본은 해지고 거뭇거뭇해졌다.
등대에 다다르면 '국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지난 1월 진도 팽목항 주차장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1주기를 앞두고 꽃 장식과 단원고 2학년 각 반 학생들 이름과 천진한 웃음이 담긴 조각 작품이 새로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추모객의 발길이 뜸했던 팽목항에는 분향소가 들어선 이후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매일 50∼100여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즐겨 먹던 과자, 과일, 음료가 소박하게 자리 잡은 제단 위에는 추모객들이 제사상을 차리는데 보태라며 남긴 5천원, 1만원짜리 지폐 두 어장이 눈에 띄었다.
304명의 영정사진 액자 중 실종자 9명의 것에는 '너랑 엄마랑 바꿨으면'이라는 애끓는 부모 마음이 담긴 글귀가 쓰여있었다.
분향소 맞은편 임시 숙소에는 실종자 가족 권오복(60)씨가 혼자 쓸쓸한 항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18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 해체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가 약속했던 선체 인양 논의를 촉구하며 서울과 세종시 등을 오가고 있다. 건강이 나빠져 입·퇴원을 반복하느라 팽목항 임시 숙소를 비우는 일도 잦다.
권씨는 참사 직후부터 7개월간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소주 한 병에 잠을 청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팽목항에 마련된 컨테이너로 거처를 옮겼다.
"어차피 호강하려고 온 것도 아니잖아요. 산 사람은 그래도 다 적응이 돼요. 추운 곳에서 고생하고 있을 동생과 조카를 생각하면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도 내키지 않고요."
환갑인 권씨는 가정이 파탄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도 느꼈지만 형으로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동생과 동생의 아들(조카)에 대한 도리를 다하기로 했다.
권씨는 "모든 일이 세월이 가면 어느 정도 잊히기 마련인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인명 구조에 '골든 타임'이 있듯이 정부가 남은 사람들을 찾고,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인양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경기도 안산시에도 상흔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2일 오후 안산시에는 "공무원이 장악한 특별조사위 웬말이냐", "별이 된 아이들이 묻습니다. 지금은 밝혀졌나요" 등 안산경실련과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안산시민대책위원회 등이 내건 노란 현수막이 주요 길목마다 펄럭였다.
전날 이곳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배구 챔피언결정전에 나선 안산시를 연고로 둔 OK저축은행 배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도 팀을 상징하는 노란색이어서 뒤섞인 일상과 슬픔이 묘하게 대비됐다.
안산소상공인연합회장 송길선씨는 "40%가량이던 창업자 폐업률이 사고 이후 80%까지 치솟은 뒤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사고 1주년을 맞아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이제는 차츰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들어선 정부합동분향소 주변 가로수 사이로 줄지어 나붙었던 노란 리본은 모두 치워졌지만, 분향소를 찾는 시민의 발걸음은 간간이 이어졌다.
분향소 내 희생자들의 영정 앞으로 차려진 제단에 놓인 사진과 편지, 꽃들은 여전히 시민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경찰이 꿈이던 한 학생을 위해 안산단원경찰서 측이 가져다 놓은 경찰 제복도 눈에 띄었다.
분향소 옆 경기도미술관 내 세월호가족협의회 사무실에는 유족을 돕는 자원봉사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회의실은 굳게 닫혔다. 이곳에 있던 유가족들은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선체인양과 진상규명, 희생자 배·보상 절차 중단을 촉구하고 눈물을 흘리며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인근 단원고등학교는 하굣길에 나선 교복 입은 학생들로 분주했다.
"당신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단원인 끝까지 합께 합니다"라고 적힌 단원고 학생과 교직원, 총동문회가 정문에 설치한 현수막 2개가 이곳이 지난해 어떤 참사를 겪은 곳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2층의 한 교실 밖으로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싶다"는 '아버지'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 남학생들의 화음으로 새어나왔다.
'세월호 1주년 비상근무'라는 안내문이 붙은 교무실에서 만난 한 교사는 "1주년을 맞이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추모제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친구들을 떠나보낸 학생들은 학교 수업과 마음건강센터에서 받는 치유프로그램을 계속 병행하고 있지만 잘 이겨내고 있다"고 전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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