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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안된다> ①되풀이되는 인재…매뉴얼 제대로 만들자



서해훼리호 침몰 후 21년, 후진국형 인재는 수십년 반복


반복되는 사고에서 못 배우는 정부…여전히 '우왕좌왕'


매뉴얼 전면 재검토 필요…"화석 아닌 생물로 만들어야"


<※편집자주 = 세월호 참사 구조·수습 과정에서 대형 재난에 대한 대응책 미비와 위기관리 능력 부재 등 총체적인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후진국형 인재 실태를 정밀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과제로 남게 됐습니다.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매뉴얼과 대응 시스템의 재구축, 선진국의 방재 체계 현황 등을 다루는 기획 기사를 1일부터 14일까지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인명이 최우선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온 나라를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는 '인명을 최우선에 두고 사고를 처리하라'고 선원 행동 요령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500명에 가까운 탑승객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던 선장과 선원은 위기에 맞닥뜨리자 관련 규정을 무시하고 '나부터 살고보자' 탈출에 나섰다.

해양경찰도 마찬가지였다. 구조를 요청한 학생에게 되레 위도와 경도를 물으며 시간을 허비했고 물에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며 속수무책이었다.

해경은 결과적으로 선장과 선원부터 구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고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세월호 내부에 진입해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는 미숙함을 보였다.

선박 좌초 방지가 임무인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 역시 세월호가 보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세월호 내부에선 300여명의 탑승객이 "살아서 만나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끝까지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정부는 국민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국민은 정부를 끝까지 믿었다




◇ "반성하면 뭐하나"…수십년째 지속하는 인재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후진국형 인재(人災)가 이어진다. 재난 대응 매뉴얼이 있어도 이를 숙지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판단해 행동하는 사람도 시스템도 없다.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는 문제점을 인정하고 재발방지책을 앞다퉈 발표했지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땜질식 대책이었던 셈이다.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 32명이 숨진 성수대교 붕괴(1994년),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101명이 숨진 대구지하철 가스폭발(1995년)에서 드러났던 정부의 무능이 세월호 침몰에서도 그대로 재현됐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삼풍사고를 기록한 백서에서 "대형참사 때마다 지적돼 온 비상구조체계의 문제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출됐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백서는 "소방, 군부대, 경찰, 자원봉사자 등에 대한 통합 지휘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역할 분담이나 책임 한계가 불분명했다. 이런 혼선은 사고 수습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고 적고 있다.

전라북도는 서해훼리호 사건 백서에서 "승선인원의 철저한 확인과 승선인원 통제가 있어야 했다. 감독을 소홀히 한 당국의 과실이 크다"고 밝혔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으로부터 해군작전사령부, 합참, 국방부, 청와대까지 보고하는데 23분이 소요됐다. 상황보고와 전파체계를 비롯해 위기관리시스템의 운용능력과 초동조치 능력이 향상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거듭된 반성에도 공무원들은 지금도 지휘체계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국가 재난 콘트롤타워는 여전히 위기관리 능력이 낙제점이다.

◇ 정부 매뉴얼만 3천여개…실효성은 '낙제점'



대형 사고 때마다 결정적인 실수가 되풀이되자 정부에 재난 대응 매뉴얼이 있기는 한 것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현재 정부의 재난 매뉴얼은 3단계로 구성돼 있다. 25종의 재난에 대한 주관 부처의 대응지침을 담은 '표준매뉴얼'이 있고 그 아래 지원기관의 역할을 담은 '실무매뉴얼' 200개가 있다.

가장 밑에는 자치단체와 지방청 등의 역할을 규정한 3천200여개의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이 존재한다. 매뉴얼이 3천개가 넘는다고 하자 세월호 사고 직전만 해도 "있을 건 다 있다", "예방 시스템이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도 역시 지난해 9월 '안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대표적인 대형 재난 11건을 분석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점검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매뉴얼의 실체가 드러났고 실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

매뉴얼에는 사고 발생 초기, 즉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에 군, 소방, 경찰이 어떻게 역할을 분담해 구조활동에 나설지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신 두루뭉술한 행동요령과 담당 공무원의 비상연락처만 빼곡히 들어 있다.

훈련도 요식 행위로 진행되고 있다. 재난 콘트롤타워인 안전행정부의 '2014 위기대응 연습훈련 기본 지침'은 훈련 방식에 대해 '토론형 훈련(매뉴얼 숙달)을 중점 실시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 지침은 현장 실습을 '보여주기식 훈련'으로 규정하면서 올해는 이를 탈피해 매뉴얼 숙달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화석화된 매뉴얼을 '생물'로 만들자



세월호 참사 이후 화석화된 매뉴얼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위기대응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에 현실성을 불어넣고 매뉴얼을 운용하는 인력을 전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매뉴얼을 만들 때 유관 행정기관이 모두 참여해서 만들고 변화하는 사회상을 시시때때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뉴얼 작성에 관련기관들이 참여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매뉴얼이 서류작업에 그치고,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3천개가 넘는 매뉴얼은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이후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만 바뀌는 식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또한 산업단지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등의 도시 변화, 인구와 교통량의 변화, 화학물질 배출량 등 여러 사회 변화도 반영되지 않았다.

조원철 연세대 방재안전관리 연구센터장은 "매뉴얼은 평균값인데, 재난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며 "매뉴얼이 크고 작은 재난 모두에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다 만들어놓고 진행하는 보여주기식 훈련이 아니라 각종 상황을 다양하게 설정하고 연습해보면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찾아내 매뉴얼에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무 내용을 정확히 숙지하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 공무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이 나온다.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학장은 "국세청에 세무 전문 공무원이 있듯이 안전 분야에서도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며 "재난 대응 부처는 정권이 바뀌어도 손을 대지 말아야 하고, 방재안전 직렬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withwi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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