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이모씨 "뒤집힌 배 위에서 구조될 거라 믿으며 버텨"
"나도 오늘 마지막에 정 안 되면 배를 잡은 이 손을 놓는다. 그때까지만 30분만 더, 한 시간만 더 버티며 구조를 기다려보자."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을 항해하던 돌고래호(9.77t·해남선적)는 어둠이 내린 5일 오후 불룩한 배 바닥을 하늘로 향해 드러누워 버렸다.
돌고래호의 생존자인 이모(48)씨는 당시 바로 그 위에 올라 다짐하고 다짐했다. 누군가 구조해 줄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사선의 경계를 넘나든 시간은 장장 10시간이 넘었다.
돌고래호가 마지막으로 다른 선박과 연락이 닿던 5일 오후 7시 38분께 이후부터 구조된 다음날 오전 6시 25분께까지다.
순간 풍속 초속 11m 이상의 칼바람과 빗줄기, 2m 이상의 높은 파도는 그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고 손을 놓으라'고 종용하는 듯했다.
뒤집힌 배에서 같이 버티고 있던 이들도 한 명, 한 명 암흑의 바다로 사라졌다.
"금방 해경이 구조하러 올거다"라고 다독이던 선장 김철수(46) 씨도 어느새 시야에서 멀어졌다.
19∼20명이던 승선자 중 이씨와 함께 박모(38)씨, 김모(46)씨 등 단 3명만이 남았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도 시간이 무심히 흐르고 구조의 손길은 오지 않았다.
이씨는 "해경 함정이 저 멀리 지나가는 게 보였다. '살려달라', '살려달라' 소리쳤지만, 불빛도 비추지 않고 가버렸다"고 낙담하기도 했다.
구조에 대한 믿음이 점점 희미해만 갈 때 도움의 손길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완도읍 선적 연안복합인 흥성호(9.77t)가 우연히 사고 해상을 지나가다가 기적처럼 뒤집힌 돌고래호를 발견, 이들 3명을 구조해 낸 것이다.
이들은 당시 어떤 기억을 더듬으며 구조에 대한 믿음과 삶에 대한 용기를 끝까지 잃지 않았던 것일까.
이씨는 구조되고 나서 기자의 이 같은 질문에 당시를 회상하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참을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바다에서 사라진 그들, 한 명, 한 명 살았나요?" (연합뉴스)
사진 : 제주해경 캡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