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동창과 떠난 남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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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니 소금사막의 기차 무덤. 사진/이구름 제공


여행은 흔히 명소 위주로 여정이 짜인다. 그래서 전체적인 일정이나 한곳에서 머무는 시간을 보면 서로 어슷비슷하기 마련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이구름과 김새움은 보통의 여행자와 달리 ‘사람’을 이정표 삼아 여행을 다녔다. 이들은 그곳에서 운명처럼 사람들을 만났고, 낮과 밤을 함께 지냈으며, 어떤 이들과는 등을 다독이는 우정을 쌓았다.

“지구 반대편에는 누가 살까? 이 시간에는 뭘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이들의 여행은 시작됐다. 깨어 있을 때 잠들어 있고, 추위로 움츠릴 때면 맨몸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척점의 대륙. 김새움(28)과 이구름(28)에게 남미는 언제나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처럼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막연하게 “언젠가 한번 가자”고 얘기한 이후, 일상의 지표 아래 한동안 묻어 두었던 남미에 대한 호기심은 2012년의 차가운 겨울에 갑작스레 싹을 틔웠다.

여행은 그들의 원초적인 호기심처럼 사람에 초점이 맞춰졌다. 어디를 갈지, 어디에서 얼마나 머물지 계획한 건 하나도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일하게 한 일이라면 그들의 특별한 사람 여행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사람사람 프로젝트’라는 제안서를 국내 업체에 제출해 카메라와 등산복, 신발 등을 협찬받은 것이 전부였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김새움은 당시 국내 대기업의 칠레 법인에서 일을 하고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그래픽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이구름은 스페인어도 영어도 할 수 없었지만 과감한 행동파에, 어딜 가나 환영받는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둘은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12시간의 시차와 2만㎞의 거리를 뛰어넘어 만나 2013년 1월 4일 사람 여행에 나섰다.

◇남미 4개국에서 만난 특별한 사람들

이들은 거의 4개월간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 칠레를 한 달씩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무료 숙소를 제공하는 ‘카우치 서핑’의 집주인이나 호스텔 운영자, 길거리의 노점상 디자이너, 밴드 공연장의 동성애자, 바람둥이 피아니스트 그리고 그들로부터 가지가 뻗어나간 가족이나 친구 등 인연은 우연처럼, 운명처럼 그들에게 다가왔다.

가장 운명적인 만남은 여성 음악 밴드 ‘마리네로스’(Marineros)였다. 칠레 산티아고에 있을 때 숙소로 사용하던 아파트 위층에서 매일 똑같은 노래가 3~4시간씩 커다랗게 흘러나왔다. 몇 주가 지난 후 둘은 ‘미친 사람이 살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약간의 짜증과 커다란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가 벨을 눌렀다.

“물론 궁금증이 훨씬 컸어요. 문이 열리자 무작정 활짝 웃으며 찾아온 이유를 말했죠. 시끄럽다고 항의하러 온 줄 알았었나 봐요. 그들은 저희 미소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어 보였죠. 그렇게 그날부터 친구가 됐죠.”

그곳에는 단발머리의 콘스탄자와 긴 머리의 솔레다드, 그리고 검은 고양이 올리비아가 함께 살고 있었다. 두 여자는 데뷔를 준비하고 있던 인디 밴드였다. 그날 이후 네 여자는 종종 서로의 집에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숙소를 잡고 나서 그 나라 사람들처럼 생활하다 친구를 만들고, 다시 친구의 친구를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됐죠.”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파블로와는 그의 아버지의 고향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고, 엠마뉴엘과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1주일간 시골여행을 즐기고 ‘무로’(Muro)란 곳에서 그의 친구들과 춤으로 대화를 나누는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칠레에서는 동성애자 친구 펠리페를 만나기 위해 북쪽 끝의 아리카(Arica)를 방문하기도 했다.

물론 각자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각인된 사람은 달랐다. 김새움은 서로 외국인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각별해진 카티를, 이구름은 스스럼없이 지냈던 예술가 파블로를 꼽았다. 물론 공통점은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지치고 위험한 순간도 여행의 일부

사람 여행은 둘을 지치게도 했다. 여행이 석 달째로 접어들었을 때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인 볼리비아의 라파스에 도착했다. 해발 3천600m가 넘는 그곳에서 처음 이틀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경사를 오를 때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곳에서도 길거리에서 공예품을 파는 디자이너 오스카를 만나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할아버지가 있는 시골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갑자기 힘들게 느껴졌어요. 고산병 증세로 인한 체력 저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아무튼 그곳을 떠나 쾌적하고 아는 사람이 있는 칠레로 갔어요.”

화려하게 색칠한 집들이 인상적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La Boca) 지역에서는 강도를 만나기도 했다. 그곳이 우범 지역이라는 사실을 안 이구름은 카메라를 품속에 감추고 시계도 차지 않았다. 그런데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급히 사진기를 꺼내 찍으려는 순간 한 남성이 카메라를 붙잡았다. 카메라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싸움도 벌였지만 결국 빼앗기고 말았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너무 무섭고 여행을 지속하기도 싫더라고요. 빌린 카메라여서 돈도 물어줘야 했고요.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며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만나 하소연도 하고 함께 놀다 보니 금방 다 잊어버렸죠.”

◇여행 이후에도 만남은 지속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명소를 전혀 찾아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페루의 마추픽추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고 존재의 미미함을 경험했으며, 장엄한 이구아수 폭포를 목도하고 볼리비아에서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그러나 가슴속 깊이 남은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지만 그곳에서 사귄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출간한 ‘사람-여행’에서도 그들은 남미의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둘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구름은 그래픽디자인, 일본어 통·번역, 회사 컨설팅 등 훨씬 다양한 일을 하게 됐고, 김새움은 잡지에 여행기를 기고하고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전공이나 배웠던 것에 따라 직업이 정해졌는데, 기존의 틀을 지우고 나니까 뭐든 할 수 있었어요. 여행한 이후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죠. 굳이 정해진 대로 살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 옆에서. 사진/이구름 제공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 옆에서. 사진/이구름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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