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아방' 베를린 예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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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위트’, ‘낭만’은 아방의 작품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작은 머리에 커다란 체구,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이국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밝고 화사한 그림을 그려낸다. 그의 그림은 잡지와 책을 비롯해 음반, 휴대전화, 여행 가방, 기타 케이스 등에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작업을 하는 그녀. 여행을 떠나기 전 스물일곱 살의 하루는 오직 일로만 채워졌다.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의 방이 두 개 있는 집에서 방 하나는 생활 공간으로, 또 하나는 직장으로 삼아 새벽에 작업실로 출근하면 주말도 없이 온종일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편집 디자인 회사 생활 3년차에 사표를 던지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로 뛰어들었어요. 일에 속도가 붙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죠. 저만의 일을 한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럴수록 외로워졌고 그만큼 또 탈출이 절실해졌어요.”

'48시간 노이쾰른' 전시를 위한 준비 작업. 사진/아방 제공
'48시간 노이쾰른' 전시를 위한 준비 작업. 사진/아방 제공

◇순탄하면서도 바쁜 일상에서의 탈출

그런 순탄하면서도 바쁜 일상이 이어지던 지난해 3월 어느 날 그녀는 돌연 베를린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4년 전부터 상상한 여행지도 베를린이었고, 그녀의 탈출을 받아주고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곳도 베를린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길로 특수헤어 전문 숍에 가서 거칠게 엮은 레게 스타일로 머리 모양을 바꿨다. 무한한 자유를 탐닉하기에 레게 머리만 한 것은 없는 듯했다. 습관처럼 머리를 감을 필요도 없어졌다.

떠나기까지 3개월 정도가 남았지만 여행을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베를린 여행의 목적이 관광 명소를 돌아보는 데 있지 않고, 예술 현장을 보고 느끼며 예술가들을 만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에 준비한 단 한 가지는 잠자리였다. 그것도 일반 여행자처럼 호텔이나 호스텔이 아닌 베를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이었다. 나만의 여행을 위해 용기를 내는 첫 단계이기도 했고 베를리너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그녀는 ‘카우치 서핑’ 사이트를 이용해 메일을 보내 잠자리를 마련했다.

초여름 한국을 떠나던 날 그녀의 여행 가방에는 가이드북이나 지도는 없고 스케치북과 52색 크레파스, 옷가지 그리고 만약을 대비한 호신용 스프레이가 전부였다.

독일 베를린 거리의 사진관. 사진/아방 제공
독일 베를린 거리의 사진관. 사진/아방 제공

◇예술이 공기처럼 스며 있는 거리와 사람들

베를린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외로움을 느낄 정도로 풍경이 낯설고 사람들은 차가웠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조그만 한국인 여자애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도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상상했건만 말을 걸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급기야 첫 번째로 숙소를 제공하기로 했던 아드리앙은 비행기 파업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으슬으슬한 날씨에 몸살까지 났다.

베를린 남부의 노이쾰른(Neukoelln)에 살고 있는 대학 선배의 집에서 며칠 머물러야 했다. 그곳에서 지내며 마침내 상상했던 베를린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의 작업실과 카페, 바, 옷 가게에서 벌어지는 미술 전시회는 흥미로웠고, 손에 맥주를 하나씩 들고 작품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선 예술이 물이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곳곳에 스며 있었다.

대학생 뮤지션 피터, 필립, 니코의 집에 머물면서는 숲 속에서 펼쳐지는 신기한 음악 축제를 감상하고 강과 숲이 있는 공원에서 베를린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상을 함께했다. 이탈리아 출신 편집 디자이너 마르코와는 자신이 디자인한 그림으로 함께 버튼을 만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 건축과 디자인을 전공하는 스테판과 같이 지내면서는 베를린예술대학교 수업을 청강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여섯 곳의 잠자리를 이동해 가며 상상 속의 그림을 완성해 갔다.

물론 머물렀던 집의 주인이 모두 편했던 것은 아니다. 47살의 사진작가 조의 집은 원룸이었고, 그는 친절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우고 그녀는 도망치듯 조의 집에서 나왔다.

“한국에서 숙소를 정할 때 직업, 사진, 평가를 보고 골랐죠. 그런데 방의 구조라든가 그런 정보는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제 또래였는데, 조는 나이가 많아서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상상은 언제고 현실이 된다’

베를린 여행은 떠날 때부터 한 달로 정했다. 자극과 낯섦을 느끼기 위해 찾아간 여행지가 익숙해지는 것이 싫었다. 한 달도 안 돼서 베를린의 지하철 노선이 빤해졌고 집을 전전하며 짐을 풀었다 싸는 것도 베테랑이 됐다. 그렇게 한 달을 채우고 그녀는 베를린을 떠났다.

“4년 전 베를린에서 가방을 둘러메고 길거리를 헤매는 나 자신과 그 길에서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상상하면 언제고 현실이 되는 것 같아요.”

베를린에서 돌아온 그녀는 조금 달라졌다. 하는 일은 똑같지만 일상이 여유로워졌다. 이전에는 밥 먹고 일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뒤죽박죽일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또 일 대신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녀는 최근 베를린에서의 한 달을 정리해 ‘미쳐도 괜찮아 베를린’이란 책을 펴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쓰는 어릴 적 상상도 그렇게 현실이 됐다. 지금 그녀는 영국 유학을 떠나는 또 다른 상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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