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내년도 경영계획에서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올해보다 낮게 잡은 것은 내년 주택시장 거래가 올해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주택거래가 활성화되고 가계도 집을 살 여력이 있어야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데, 내년에는 주택시장 분위기나 경기 여건 모두 가계대출 확대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3분기 들어 살아나는 듯했던 주택시장은 4분기를 지나면서 다시 활기를 잃어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도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특단의 정부 대책이 다시 나오지 않는 이상 가계대출은 올해만큼 증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LTV·DTI 완화로 7월 이후 가계대출 급등
16일 금융권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508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7.0% 늘었다.
가계대출 증가는 지난 7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과 관련된 금융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9월에는 재건축 연한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규제 완화책(9·1 부동산 대책)까지 발표한 데 따른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올해 1월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3.2%였던 가계대출 증가율은 7월 4.6%, 8월 5.3%, 9월 6.2%로 급증세를 보여왔다.
LTV, DTI 규제 완화가 담보대출 여력을 늘리면서 그동안 눌려왔던 주택담보대출 잠재 수요를 폭증시킨 것이다.
주택시장도 한동안 활황을 보였다.
국민은행이 집계하는 아파트 주택매매가격 종합지수는 1월 100.7(2013년 3월 100 기준)에서 11월에는 102.8로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부동산 대책 약효 다해"…내년 주택시장 전망 '침울'
그러나 연말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부동산 관련 대책도 약효를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LTV, DTI 규제완화로 가계의 대출 여력이 늘어났고 거래량도 한동안 증가했다"며 "하지만 대출 수요가 어느 정도 소진되면서 또 다른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내년 거래량이 올해만큼 늘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시장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114의 서울 아파트 가격은 11월 셋째주 들어 22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고, 주택산업연구원의 전국 주택사업환경지수는 전망은 10월 157.6에서 11월 116.3, 12월 105.3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가 지난달 전국 부동산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73.5%가 "9·1 부동산대책 효과가 끝났다"고 답변했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박사는 "정책 효과가 사라지고 경기 회복세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난 10월과 같은 거래 활황이 내년에 다시 이어지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 가계대출 목표치 하향조정…"대출 증대요인 없어"
시중은행들도 이런 경기 인식에 기반해 내년도 가계대출 목표치를 올해보다 대폭 하향 조정하고 있다.
올초부터 11월까지의 가계대출 증가율이 6.9%에 달하는 농협은행은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을 3.3%로 책정했고, 같은 기간 증가율이 9.3%에 달했던 국민은행은 내년 증가율이 5% 후반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2.5%의 가계대출 증가율을 보인 우리은행[000030]은 내년 증가율을 목표치를 5.7%로까지 낮췄고, 올해 8% 증가율을 보인 신한은행은 내년도 전망을 5%대 초반대로 잡았다.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을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주택경기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이상 가계의 대출여력도 크지 않으리라 본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임진 연구위원은 "내년에 특별히 주택시장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회복속도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은행들도 보수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기회복 부진으로 가계의 소득증대도 크지 않다 보니 은행으로서는 부실률을 낮추기 위해 대출심사의 고삐를 죌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개인금융담당 임원은 "올해 시해된 LTV, DTI 완화 효과도 이미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 들어 가계대출 수요가 늘어날 요인이 없다 보니 대출 계획도 이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