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덜 받는 사람들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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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중편 '선화' 펴낸 소설가 김이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뮤지컬 '시카고'에 나오는 노래 중 '미스터 셀로판'(Mr. Cellophane)이라는 노래가 있다. 

"미스터 셀로판, 그게 바로 내 이름이었어야 했죠∼ 사람들은 내 곁을 지나면서도 내가 거기 있다는 걸 모르죠∼"  

우리 곁에 있지만 존재감이 미미한 '미스터 셀로판'. 하지만 소설가 김이설(39)의 작품에선 '미스터 셀로판'은 조연도, 엑스트라도 아닌 주인공이다. 작가는 '미스터 셀로판' 같은 남루한 인생들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왔다.

3년 만에 펴낸 새 중편 소설 '선화'(은행나무 펴냄)의 주인공 선화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화염상모반이라는 병을 갖고 태어난 선화의 오른쪽 얼굴에는 꽤 넓고 짙은 얼룩이 있다. 바깥을 나설 때 모자는 필수품이다. 모자를 쓰지만 그래도 행여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바라보며 걷는다.

청주에 사는 작가를 24일 전화로 만났다.  

작가는 "제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햇빛을 덜 받는 사람들,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서 "선화도 그런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설마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인물들을 더 날카롭게 그려냈다면 지금은 좀 더 보편적인 인물들, 독자가 '나'로 바꿔서 생각해볼 수 있는, 그래서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있어요."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작가의 설명에도 '선화'를 읽어가다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책장을 넘기다가 갑자기 서글퍼져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답답해 온다.  

"내 얼굴을 내 손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내 오른쪽 얼굴을 칠 때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제발 이 자리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짝, 짝, 짝, 짝, 소리가 반복될수록 짝, 짝, 짝, 짝, 감각은 무뎌지고 짝, 짝,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45쪽)  

"아버지는 평생, 나에게, 내 얼굴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괜찮다는 거짓말도, 참고 살 수밖에 없다는 진실도, 하다못해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허풍조차 떨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었다. 당신이 만들어놓은 자식이므로 적어도 한 번쯤은 미안하다고 말해줬어야 했다. 아직 그 말도 못 들었는데……"(59쪽)

선화의 언니도 얼굴에 흉터를 갖고 있다. 흉터를 낸 건 선화였다. 엄마가 불쌍한 선화만 싸고도는 게 싫었던 언니는 선화의 책가방에 꽃꽂이에 쓰는 화침을 넣어뒀고 이 일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한 선화는 화침으로 언니의 얼굴을 찍어버린다. 그후 두 자매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다.

엄마도 선화의 생을 무겁게 누르는 아픔이다. 선화의 엄마는 지금 선화의 나이와 같은 서른다섯에 자매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선화는 그런 엄마의 죽음을 동정할 수 없었고 이해할 방법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엄마는 대체 무엇이 그토록 끔찍했던 것일까. 적어도 나 같은 딸을 두었다면 조금 더 살았어야 옳다." (11쪽)  

선화처럼 얼굴에 커다란 얼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면 저마다 지닌 크고 작은 아픔 때문이 아니었을까. 얼굴의 얼룩보다 더 큰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선화에게서 서글픈 동질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는 "뾰루지 하나 생겨도 병원에 가는 요즘 그런 얼굴을 가진 여자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어려운 핸디캡을 가진 여자의 고단한 하루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선화를 정말 괴롭혔던 건 과거의 더 깊은 상처이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그는 "상처 없는 새가 없다는 말처럼 상처 없는 사람도 없다"면서 "개별적인 상처를 가진 우리가 나와는 다르지만, 상처와 흉터를 지닌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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