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 중앙홀 벽화
국립중앙박물관 '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천600여 건에 이르는 적지 않은 아시아지역 문화재가 있다.
그 내력을 추적하면 대체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미술관이 수집한 것이 대부분이다. 물목을 보면 중국 한대(漢代) 고분 출토품부터 근대 일본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하다.
한데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들 중 상당수가 약탈품이다. 이는 적어도 문화재에 관한 한 우리는 식민지배의 일방적 피해자일 뿐이라는 통념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당시 대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이웃 나라에는 문화재를 약탈한 지역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 아시아부가 이들 문화재가 어떤 시대의 맥락에서 수집되고, 또 그것들이 어떻게 전시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번 특별전 담당자인 이태희 학예연구사는 오는 29일 이곳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하는 '동양(東洋)을 수집하다-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되었던' 아시아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스스로 '동양 유일의 문명국'으로 생각했고, 그에 따라 낙후된 동양을 문명세계로 인도할 적임자라 자부했다. 그의 말마따나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승자의 시선으로 아시아 각국의 역사를 해석하고 그것을 박물관에 담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내년 1월11일까지 계속할 이번 기획전은 그들의 수집품 중 불비상(佛碑像)과 반가사유상을 필두로 200여 점에 이르는 당시 아시아지역 수집품으로 일본이 그리고자 한 동양과 아시아를 돌아보고자 한다.
흔히 오리엔트(Orient)의 번역어로 생각하기 쉬운 오늘날의 동양이라는 말은 실은 근대 일본의 발명품이다. 이런 말은 13세기 중국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 의미가 중국, 특히 무역항으로 이름 높은 지금의 광저우를 기준으로 동쪽 바다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19세기 후반 이래 일본은 다른 맥락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당시 일본은 유럽 열강을 서양(西洋)이라 통칭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동양'을 개척했다. 이것이 요즘 한국사회에서 통용하는 동양이다.
이번 특별전은 그들의 문화재 수집품을 통해 일본이 어떻게 동양이라는 관념을 만들어갔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전시는 먼저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중국 베이징(北京), 만주, 일본 규슈(九州) 등지에서 수집한 문화재를 정리하고,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이 자랑하는 해외 컬렉션인 중앙아시아 소장품에 담긴 내력을 소개한다.
나아가 이왕가박물관에서 수집한 중국불교조각과 이왕가미술관이 수집하고 전시한 일본근대미술의 역사도 아울러 돌아본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한편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일본의 문화재는 참고품으로 수집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1918년에는 중국 현지에서 직접 진열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1923년에는 후쿠오카에 거주하는 일본인으로부터 120여 건의 고대 일본 유물을 구입했다.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중앙아시아 소장품을 세계적인 문화재로 손꼽으면서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치적(治績)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했다.
이런 점들은 어쩌면 조선총독부가 단순히 식민 본국 일본정부의 허수아비나 꼭두각시만은 아니라 어느 정도는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정치체제였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국립박물관이 기획하는 전시로는 이례적으로 주제가 추상성을 농후하게 띠고 무거운 편이다.
하지만 이런 외국 문화재가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었네 하는 느낌을 주는 출품작이 적지 않다.
조선총독부 지원으로 진행한 만주 조사 스케치 및 북만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부여의 얼굴모양 장식이 있는가 하면, 이왕가박물관 창경궁 명정전에 석굴암 모형과 함께 전시된 중국의 불비상과 북위(北魏) 및 북제(北齊)시대 반가사유상이 공개된다.
나아가 옛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홀에 걸렸던 벽화도 나들이한다. 이 중앙홀 상부에는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와다 산조(和田三造.1883~1967)가 그린 두 개의 그림이 걸렸었다. 한국과 일본에 공통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하나는 미호(三保)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금강산을 배경으로 그렸다.
신화를 묘사한 대형 그림이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면, 고대 한국과 일본의 친연성을 강조하고 아울러 이를 기초로 영구적인 식민통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다음달 14일 박물관 대강당에서는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관련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