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서방 제재에 따른 현 국가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행한 연례 의회 국정연설에서 "과거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며 "사람들은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운을 떼고서 "우리는 어떤 시련에도 맞서 이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서방이 제재를 통해 러시아를 약화시키려 한다"면서 "러시아를 유고슬라비아 붕괴 시나리오에 따라 분열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우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또 "지금 우크라이나 동부의 비극적 상황이 보여주듯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은 옳았다"며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냉소적으로 대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 개입한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의사가 없어 보이며, 우크라이나 정부도 국민을 챙길 뜻이 없다면서 반면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325억 루블(약 6천900억원)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크림 병합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크림은 러시아의 모체인 고대국가 루시에 기독교를 도입한 블라디미르 대공이 스스로 세례를 받은 곳으로 러시아에 크림은 유대교도와 무슬림들에게 예루살렘의 성전산(聖殿山)이 갖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은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 유럽 등 서방과의 관계를 단절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현재의 대치국면을 협상으로 풀어갈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서방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절대 고립이나 인종차별, 적 만들기의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는 나약함의 표출일 뿐이며 우리는 강하고 자신감이 있다"고 역설했다.
푸틴은 서방 제재에 따른 국내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4년간 세금을 동결하고 국부펀드를 풀어 안정화하겠다며 민심을 달랬다.
그는 대규모 자본 유출로 인한 혼란을 차단하기 위해 해외에서 국내로 복귀하는 자금에 대해 사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인이 러시아에 자본과 자산을 합법적으로 등록하면 확실한 법률적 보장을 받을 것"이라며 "자본의 출처나 취득 방법에 대해 묻지 않을 것이며 사법기관이나 세무관청으로부터 형사적, 행정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최근 2014~2015년 경제전망을 전반적으로 하향조정해 발표하면서 올해 자본 유출 규모를 지난 9월 추정치인 1천억 달러에서 1천250억 달러로 올려 잡았다.
이같은 대규모 자본 유출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정과 서방 제재로 러시아의 투자 환경이 급격히 악화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날 약 80분 동안 이어진 푸틴의 연설은 TV 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짙은 색 정장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푸틴은 시종 간결하면서 단호한 말투로 우크라이나 사태 및 서방에 대한 기존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으며 참석한 내빈들은 수차례의 박수로 그를 지지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