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어머니' 전혜진..중년~노년 나이 초월한 연기
혜경궁 홍씨가 다급히 달려와 사도세자가 칼을 빼들고 경희궁으로 갔음을 알린다. 이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는 넋 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영화 '사도'에서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비극의 후궁 영빈 역을 맡아 중년부터 노년까지 나이를 초월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는 전혜진(39)이다.
초반 흥행에 성공한 '사도'가 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둔 25일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혜진은 이준익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왜 나한테 이걸 주셨지?" 싶었다고 한다.
"대본이 워낙 세더라고요. '어떻게 나를 아시지?', '왜 나한테 이걸?'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극단 차이무 선배인) 송강호 선배가 영조 역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 그럼 더 잘해야 되는데?' 하면서 고민이 시작됐어요. 그런데 막상 매니저한테 전화가 왔다고 하니 '영광이라고 전해 드려'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들어간 '사도'는 배우 전혜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
'사도'는 배우들이 연기력 대결이라도 하듯이 주연부터 조연까지 쟁쟁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포진해 무대를 누비는 영화다.
그 가운데서도 왕에게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죄를 고변하고, 그 참혹한 결과에 정신을 놓아버리는 영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 배우가 원래 저렇게 대단했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된다.
전혜진은 무엇보다 촬영 현장이 마음을 열고 연기할 환경이 됐다고 주변으로 공을 돌렸다.
"캐스팅 보드를 보고 마음을 쫙 열었어요. 친한 극단 선배들이 쭉 있는 거죠. 마음이 확 열리면서 현장이 편안해졌어요. 배우들이 현장에서 막 살갑게 대하고 그러진 않거든요. 또 제가 나오는 장면들이 대비, 중전 등 여자들만 방에 줄줄이 늘어앉아 있는 거였으니 긴장감도 상당했고요. 그런데 배우들이 서로 좋아하고 통하는 게 느껴졌어요. 한명 한명 모난 사람이 없었어요. 영화라는 게 이럴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선배 송강호(영조)와 김해숙(인원왕후)의 연기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했고 역시 친한 선배인 박명신(정성왕후)은 물론이고 후배 문근영(혜경궁 홍씨)과 유아인(사도세자)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다.
"강호 선배는 배우로서 좋은 지점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여태껏 보지 못했던 눈빛도 봤고, 송강호라는 배우의 다른 겹을 하나 더 보여준 것 같아요. 김해숙 선배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 뵀는데, 제가 나오지 않는 장면이라도 선배가 나오는 장면을 옆에서 듣고 있었어요. 듣고만 있어도 좋더라고요."
게다가 이준익 감독은 전혜진을 특히 '격하게' 아꼈다고 한다. 현장에서 이 감독과 가장 오랜 시간 붙어 있으면서 영화와 연기, 인생에 관해 대화하고 고민을 상담한 것도 그였다.
"감독님과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고민을 많이 얘기하고 상담했어요. 저더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즐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안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야겠다' 생각하게 됐죠. 이 감독님 때문에 영화를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최대한 즐기면서 해요."
영빈뿐 아니라 배우 전혜진도 엄마다. 그는 남편인 배우 이선균과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그는 '사도'가 여러 세대가 각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하면서, 자신도 완성된 영화를 볼 때 자식 입장과 부모 입장 양쪽에서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연기할 때는 '사도' 속 모든 인물이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영빈 역시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하며 접근했다.
"영빈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을 거예요. 왕이 아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알게 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마음이 있었고, 제 새끼를 먼저 생각하는 독한 며느리의 부추김도 있었고. 그리고 아들 이상으로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저희 친정엄마를 보면 이해가 가죠. 이렇게 제가 나와서 일할 때 저희 엄마가 아이들을 보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 '엄마는 나한테는 왜 안 그랬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웃음)"
남편 이선균도 시사회에서 '사도'를 함께 봤다고 한다. 평가는 어땠을까?
"저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안 하고 영화가 좋다고 했어요. (웃음) 저보다 더 울더라고요. 본인도 아빠니까요. 그리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제가 촬영하면서 어떻게 했고,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고, 그런 걸 다 아니까 '좋은 영화가 만들어져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부부간에 연기에 대한 조언을 서로 해주는지 묻자 "멋모를 때나 그랬다"며 웃었다.
"연애할 때는 얘기했지만, 갈수록 남편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배우로서 지는 책임감과 험난한 과정이 어떤 것인지 저도 알게 되니까 조심스러워져요. 또 남편은 연기에도 워낙 꼼꼼한 편이니 더 함부로 얘기를 못 하죠. 요즘은 잘한 부분을 얘기하려고 노력해요."
전혜진은 이선균과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2013년 연극 '러브, 러브, 러브'에서 부부로 출연했다. 그러나 그는 남편과 앞으로 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자제할 생각이라고 한다.
"연극을 해보니 주위에서 너무 배려를 해주더라고요.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이제 되도록 안 하려고요. 육아 예능이요? 어휴, 절대 안 돼요. 우리 집 얘기는 너무 '세서' 드러나면 큰일 나요. 배우 생활 못해요. (웃음)"(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