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외로운 쉰여섯 살 남자와 쉰여덟 살 여자의 이야기다.
둘의 유일한 공통점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여자는 말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일 년 가까이 같은 집에서 살았다는 것. 물론 남자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지만.
집과 가족을 잃고 방황하던 여자는 어린 시절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집을 찾아 숨어든다. 그 남자의 집이다. 집주인이 알아챌 수 없도록 식사는 편의점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유통기한이 갓 지난 음식으로 해결한다. 밥과 면에도 가끔 손을 댔지만 표시가 안나도록 '깐깐하게' 신경을 써야 했다.
박봉의 기상관측사인 남자는 혼자 빌라에 산다. 혼자 퇴근해 일찍 저녁 먹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도, 여자도, 왕래하는 가족도 없다. 분명히 15센티미터 남았던 비타민 쥬스가 8센티미터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을 때 그는 심장이 뛰었다. 설치해 두었던 웹캠은 벽장 속의 여자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냈다.
웹켐을 통해 여자의 체포 장면을 보던 남자는 생각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서둘러요. 그러지 않으면 곧 그 태양을 다시는 보지 못할 거란 말이에요. 여자가 대신 쬐주었던 오후 햇살이 이제 남자에게는 '안개가 걷혀버린' 불안함으로 다가 온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나가사키. 그 지역 신문에 '일 년째 숨어 산 여자'에 관한 사건 보도가 게재된다. 여자는 "살 곳이 아무 데도 없었어요"라고 했다. 저자 에릭 파이는 프랑스 출신의 로이터 통신 기자다. 취재차 일본에서 머물던 중 이 기사에 강렬히 끌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뿌리가 같은 대나무는 제아무리 세상 멀리 떨어진 곳에 심어도 똑같은 날에 꽃을 피우고 똑같은 날에 죽는다고 한다" 파스칼 키냐르의 글은 책의 서문에 사용됐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의미없는 모험'을 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대나무처럼 닿아 있다.
* 이런 분께 추천 : 지나칠 정도로 잔잔한 이야기가 듣고 싶은 분. 혹시 우리집에 누가 몰래 살고 있지 않을까 한 번은 생각해 보신 분(얼마전 개봉했던 영화 '숨바꼭질'같은 스릴러는 없으니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