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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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도중 끊임없이 '눈을 뜨고' 있는 지 자문하게 만든다.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무능하다못해 이를 자각하지도 못하는 중앙정부를 풍자한다. '비애국적'인 수도 주민들로부터 백색테러를 당했다고 여기는 '대통령 각하'와 총리, 내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문화부장관 들의 대화는 피식 웃음날 정도로 유치찬란하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몇 해 전 의사부인인 한 여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이 멀게 됐던 <눈먼 자들의 도시>, 바로 그 곳을 배경으로 한다. 전편에서 모두가 눈이 먼 극심한 혼란과 안이한 정부의 대책, 그 속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그려냈다면, 후속편에서는 다시 눈을 뜨게 된 도시에서 일어난 '백지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부의 혼란상 -시민들은 계속 멀쩡하다-이다.
 
작가가 포르투갈인이니 그곳의 수도라고 치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날 개최된 지방선거에서 의외의 결과가 발생한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유효표는 고작 25% 수준. 그 가운데 우익정당이 13%, 중도정당이 9%, 좌익정당은 2.5%의 득표율을 나타낸다. 무효나 기권표는 없고 백지투표가 70%를 넘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한 중앙정부는 재선거를 실시하지만 결과는 더욱 나빠진다. 우익정당 8%, 중도정당 8%, 좌익정당 1%. 역시 무효, 기권은 없으며 백지투표는 83%에 달한다.
 
"현 정부의 정통성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아니다. 비애국적인 손으로 백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총리는 연설을 통해 수도를 겨냥한 비상사태 선포를 암시한다.
 
이 같은 백지투표와 정부의 인식에 대한 정파별 해석도 재미있다. 먼저 우익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만사에 대비하라'가 슬로건인 그들은 당원들의 전투적 분위기를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도의 경우 범인 또는 음모자 처벌에는 동의하지만 비상사태 선포는 반대한다. 모든 정당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구국 내각'에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마지막으로 좌익. 이들은 자신의 득표율의 처참한 하락을 합리화해줄 선거 결과와 해석에 관심을 둔다. '백지투표가 국가 안보나 체제의 안정을 목표로 한 것이라고 생각할 객관적 이유가 없으므로 거기에 표현된 변화의 욕망은 좌익정당 강령에 포함된 진보적 제안들의 실현을 바라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지독한 병에는 지독한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방하는 치료법이 여러분에게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이 간단히 말해 치명적이기 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총리의 처방은 중앙정부가 수도를 떠나고, 수도를 고립시키고, 결국 계엄령까지 선포하게 만든다.
 
정부, 경찰이 떠난 수도. 그 속에 그려지는 평화와 질서가 아이러니하게도 당연하게끔 느껴진다. 마치 장관이 몇명 없고, 총리 후보가 수차례 낙마해도 시민들은 무슨 일 있냐는 듯 질서있게, 자유롭게 생활하듯.
 
<눈먼 자들의 도시>의 영웅을 백지투표 사태의 주동자로 몰아가는 과정, 그리고 기어코 희생양을 만들어 내고야 마는 권력자들의 집요함은 '정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한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때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할 때도 계속 진실을 말한다고요, 바로 장관님처럼, 바로 댁처럼 말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댇한테 나하고 같이 자고 싶으냐고 물었다면 댁은 뭐라고 말했겠어요, 저 기계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백지투표 가담자로 의심받던 한 여성이 거짓말탐지기를 앞에 둔 조사관을 향해 던지는 말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너, 눈 뜨고 있니?"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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